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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감상문]전주세계소리축제 KB국민은행과 함께하는 세계소리프론티어 중 이나래의 ‘옹녀’ 비평
허지성 | 2017-09-30 17:49:03 | 72

전주세계소리축제

KB국민은행과 함께하는 세계소리프론티어 중

이나래의 옹녀 비평

 

허지성(drunkenowl86@gmail.com)

 

 이 글은 2017년 9월 20~24일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 중 한국형 월드뮤직을 발굴하기 위한 ‘KB국민은행과 함께하는 세계소리프론티어’ 경연의 하나인 소리꾼 이나래씨의 옹녀’ 공연의 감상문입니다공연은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 앞 더블스테이지A에서 24일 오후 6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소리꾼에게 (나아가 전통예술 연행자 일반에게가장 고민이 되는 문제는 자신의 장르의 현대성을 유지하고 대중성을 회복하는 일 일 것이다특히 조선 후기 최고의 대중예술이며 종합예술이었던 판소리 연행자에게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한 일로 다가올 것이다이미 자신의 높은 예술성을 한 세대 이상에 걸쳐 인정받았던 장르가 불과 기백년 사이에 예술의 변두리로 밀려나가는 일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어제의 것에 대한 향수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문득 드는 복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판소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변주된 장르의 예술을 굳이 찾아가 감상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렇게 감상하게 되는 관객은 현대인에게는 낯선 이 이질성에서 잠깐의 새로움을 경험할 것이나이 생경함이 사그라질 때 즈음에는 이내 오늘의 예술과는 거리가 있음을 깨닫고 머릿 속에서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판소리가 이렇듯 어제의 예술’ 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그 중 핵심이 되는 것은 서사의 참신함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그리고 서사의 참신함이 떨어진 이유는 서사가 계속해서 살아있도록 양분을 주는 작업곧 서사를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첨가하고 제거하며 변화시켜가는 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아비의 눈을 띄우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여자가 그 효심을 인정받아 연꽃으로 환생하여 돌아온다는 이야기는상상력을 길러주기 위해 아이에게 전래동화를 읽혀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세상은 아름답고모든 일은 종래에는 잘 될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심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과학주의로 대변되는 이성/합리의 세계와 1,2차 세계대전으로 대변되는 부조리/비합리의 세계를 모두 거친 현대인의 세계관과 참으로 거리가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이야기가 현실세계와 닮아있지 않을뿐더러 현실의 유비로서도 기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판소리의 형식에 전연 다른 이야기를 넣어내자고 주장하는 것이냐면 그건 아니다하나의 예술을 논함에 있어 내용/형식을 나눔은 다만 논의의 편의를 위한 것일뿐한 덩어리로 얽혀있는 내용/형식을 무 가르듯 나눌수는 없다예술로서 판소리라는 전체는 어떤 분위기을 만들어내는데(이 분위기를 감상하는 것이 관객의 목표일 것이다서사라는 내용과 음악으로서의 소리형식은 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각자의 방식으로 일조한다그런데 내용/형식의 한 편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낸다면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게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급진적인 방식이 그 예술을 현재적으로 만들어주었던 예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예술혁신이 점진적으로 아니면 급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는 이 글의 논제가 아니며 창작자가 결정할 일이지감상/비평자가 예단할 성질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다만 적어도 우리가 심청을 기초 텍스트로 삼은 공연을 오늘날 감상할 수 있으려면 그 현재적 의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눈먼 아비를 위해 목숨을 던진 여자의 이야기는 열녀각를 차리고 효자비를 세우던 시대에는 효의 관점에서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오늘날 그렇지 못한다고 한다면차라리 빈민한부모가정여성가장으로서의 심청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욱 현재적일 것이다.


 판소리정확히는 박물관식 판소리가 현재적 예술로서 부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감상자 중 한명으로서 참 곤란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위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판소리의 소리형식이 참으로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점에 있다소리가 움직이며 가는 길이 치고 꺾고 달고 맺고 휘고 커졌다 작아졌다 쉬었다 몰아붙였다 재잘거리고 묵직하고 힘을 주었다 꺼졌다 하는 이 맵시와 솜씨소릿길에 앞장서고 뒤따르고 곁에 두었다 멀리 버렸다 짚어도 주는 하는 북 소리 그리고 이 내용/형식에 적합한 악기구성으로 분위기를 완결하는소리로서(내용으로서가 아닌)의 전체가 너무나도 예술적이어서 결함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던 차에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전주세계소리축제’ ‘KB소리프론티어에서 소리꾼 이나래’ 씨의 옹녀’ 였다. ‘옹녀는 판소리 연창으로서의 전승은 끊어졌으나 사설로 전해지는 신효재의 판소리 사설집 <변강쇠가>를 옹녀에 초점을 두고 풀어낸 음악극 공연이다. <변강쇠가>의 이야기의 얼개는 이렇다잦은 상부(喪夫)로 근방의 남자들의 씨를 말린다는 오명으로 쫒겨난 평안도 출신의 유랑민 옹녀와 천하의 잡놈이나 남성은 특출나다는 삼남 출신의 유랑민 변강쇠가 길에서 만나 합가하여 살다가생활력 없는 강쇠가 집안을 말아먹고 산중생활을 하게 되는데몰상식하게도 장승을 벌목하여 신벌을 받아 자신은 비극적 죽음을 맞고 주변인은 파국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음악극 옹녀’ 역시 이 전체의 이야기의 구성을 크게 바꾸지 않았으며 다만 이야기의 강조점에 차이를 두었는데 기물타령’(옹녀와 변강쇠가 길에서 만나 합가하여 대낮에 발가벗고 바위 위에서 서로의 성기의 생김새를 자세히 묘사하는 부분)의 비중을 줄인 것은 그 중의 하나다.


 소리형식에 앞서 서사의 두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이야기또 <변강쇠가>가 어떤 식으로 소비되었는지를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변강쇠가>의 판소리 연창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그 전에 <변강쇠가>는 80년대에 변강쇠와 옹녀를 다분히 성적인 판타지로 가공한 만화나 성인영화로서 소비되었다이들 매체에서 변강쇠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옹녀는 음기’(‘남성성의 반댓말인 여성성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자)나 탕녀를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된다둘 다 성적인 능력이 탁월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옹녀쪽에 부정적 어감의 어휘들이 사용되는 데에는 성리학적 유교 질서의 폐해가 최근까지도 뿌리깊게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인다이 두 아이콘이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며 소비되어 온 것은 달라진 사회상변화한 성의 풍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보수적 사회문화로 억압된 욕구들이 반작용처럼 해소의 대상을 필요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구제도의 관점이라는 가림막을 걷고 이야기를 다시 보면, ‘옹녀만큼 억울한 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먼저 남편 잡아먹는 여자라는 오명에 대해서 알아보자첫째 남편은 급상한으로 잃었는데 오늘날의 심장마비로 추정된다둘째 남편은 당창병으로 잃었는데 이는 매독으로 정황상 옹녀가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없다셋째 남편은 용천병으로 잃었는데 이는 오늘의 한센병으로 역시 옹녀가 원이이 되지 않는다. ‘벼락 맞아’ 죽은 넷째 남편과 천하 대적으로 몰려죽은 다섯째 남편은 더더욱 그렇다. ‘비상 먹고’ 죽었다는 여섯째 남편은 불투명하다이런 처지의 옹녀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현생이 전생의 업이라는 운명론이나 천부의 소관이 하늘에 달렸다는 팔자론’, 재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열녀론’ 등 때문인 것인데 오늘날 이러한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현대인들이라면 운명론보다는 책임론, ‘팔자론보다는 자유의지를 중히 생각할 것이다. ‘열녀론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변강쇠와 새로 합가하여 살 적에도 생활의 안정을 위해 노력한 쪽은 옹녀였다도방살림 거덜내고 말썽이란 종류의 말썽은 모두 일으킨 것은 강쇠이었고옹녀의 청으로 산중으로 들어가 살게 되나벌목일을 하던 중에 장승을 베어 신벌을 받은 쪽도 강쇠이었다.


 이러한 기구한 삶 속에서옹녀는 버티는 방식으로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고제도의 손가락질에도 개의치 않는데 케릭터로서 옹녀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정착생활과 농경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유랑민으로 살며가부장적 질서가 엄혹한 시기에 여성으로 존재하고가부장을 대신하여 생계를 유지하며남편이 죽어도 소위 따라 죽지 못한’ 미망인(未亡人)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한다이러한 여성을 보여주는 것이를 음악극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옹녀’ 공연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그리고 여러 인물을 번갈아가며 맡아 서사를 다채롭게 표현하는데 역시 판소리라는 형식이 갖는 힘을 유감없이 활용하였다정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은 나직하게 해설하고상황이 이해되는 장면은 그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소리와 음악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였다각 인물을 번갈아 맡을때마다 인물의 특징을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 소리의 톤과발성연기를 적절히 섞어나가는 것은 어째서 판소리가 탁월한 종합예술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만들어주었다무엇보다 여러 톤의 장면을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노래하면서도 이것이 한편의 음악극이라는 통일성을 갖추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나의 관심을 끌었던 대목이 두 곳 있었는데두 대목 모두 공교롭게도 옹녀라는 인물의 복합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주는 곳이었다하나는 초반부의 장면이 전환되는 두 곳에서 창자(唱者)가 내는 정신병적인 소리이다내게 이 소리는 이야기가 결국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암시와 삶의 피폐함을 끈질기게 견대내려 하지만 조금씩 금이 가는 옹녀의 마음을 표현해내는 소리로 들렸다다른 하나는 강쇠가 신벌을 받아 뻣뻣하게 굳어 죽고 장례를 치러줄 이를 노상에서 구할 때장례를 치러주는 대가로 합가를 요구하는 노장과 장구잽이에게 날리던 애매한 웃음이었다떠돌이 노장과 장구잽이 입장에서 옹녀를 취함은 굉장히 큰 사회적 자원을 얻는 일이었을 것이다상투틀고 혼례하여 얻은 아내가 아니라상부하고 간이로 얻은 여인이니 크게 책임을 지지도 않았을 것이며삼종지도니 여필종부니 하는 말로 귀찮고 수고로운 일을 종 부리듯 옹녀에게 맡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러한 자원을 단지 장례를 치러주는 정도의 노력으로 얻어낸다는 것은 말하자면 행운이었을 터, ‘옹녀편에서는 여성의 독립이 남성에 의존하지 않고는 이뤄지기 힘든 사회에서 바람에 연 날리듯 남편이 죽을 때마다 휘청거리는 자신의 연약한 삶의 조건이 얼마나 자조적이었을까더불어 상부한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채로 집도 절도 없는 생판 남에게 웃음을 보여야 하는 입장은 얼마나 처연한가야외공연인데다가 조명도 강렬하지 못하여 충분히 표현되지는 못하였으나 해당 부분에서의 조명색과 창자(唱者)의 연기톤은 웃음을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려 하였다.


 창자(唱者)인 소리꾼 이나래씨는 매우 강렬한 빨간색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다이는 제법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대중문화에서 옹녀는 명백히 성적인 이미지가 강조되어 유통되었다비록 공연의 제목이 옹녀인 것은 아니었지만경연 해설자의 소개에 따라 공연이 <변강쇠가>를 바탕으로 하여 구성된 것임을 감상자들은 알게 되었다그리고 올라온 창자의 강렬한 빨강의상을 본다면 관객들은 쉽게 옹녀의 성적인 이미지에 주목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그러나 빨간색의 의상이 색화한 것은 이런 포르노그라피적인 것이 아니라, ‘옹녀의 기구하고 역동적이며 비극적인 삶이다. ‘옹녀는 말썽뿐인 남편의 죽음에 허울 뿐인 무명의 상복을 입는 추상적 여성이 아니라고 그 의상은 말해주고 있었다.

Review on Performance of Leenarae by Heojiseong.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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