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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속 소리

[전북일보][2017 전주세계소리축제- ②개막작 '때깔 나는 소리'] 판소리와 세계음악의 조화
관리자 | 2017-10-13 09:59:40 | 17

9대목 특성 침해하지 않고 다양한 배경의 음악과 자연스럽게 앙상블 이뤄



 
▲ 김현준 재즈비평가

노래는 우리의 삶을 바꾼다. 무심코 듣던 유행가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고, 어느 무명 가수가 소소한 마음으로 부른 노래가 크나큰 혁명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음악의 역사는 결국 노래의 역사다. 리듬과 화성 따위에 집중하는 건 음악이 업인 이들의 몫. 그 결과를 듣고, 느끼고, 공감하고, 외면하는 특권을 지닌 대중에겐 노래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푸치니의 ‘별은 빛나건만’이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어떠한가. 이 곡들은 더 이상 창작자의 것이 아닌 ‘인류의 멜로디’다.

제16회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첫 막은 평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규모와 지향의 장대하고 인상적인 공연, ‘때깔 나는 소리’가 열었다. 판소리를 통해 잘 알려진 9개의 대목들을 노래로 정리하고, 여기에 각각 다른 음악의 옷을 입혔다. 클래식 성악을 노래하는 캐나다소프라노 가수가 절제된 수성가락에 힘입어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부르고, 그리스인들이 주축인 월드 뮤직 그룹의 연주를 배경으로 우리의 명창이 ‘이별가’를 부르는 식이었다. 일견 그럴듯한 발상을 무대에 옮겨낸 작업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이면엔 크게 두 가지 음악적 난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편곡의 방향과 그에 따른 앙상블의 효율이 그것이었다.

우리 전통 음악에서 도드라진 멜로디를 다른 음악(재즈, 클래식, 팝 등)의 그릇 안에서 소화하려는 작업은 수십 년간 많은 음악인들이 시도해온 일이었다. 이는 전통 음악을 월드 뮤직화(化)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이다. 그러나 우리 음악은 이미 정착된 서양의 어법과 이론적으로 상당 부분 충돌하기에 이 난제를 해결하기가 여간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때깔 나는 소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귀감이 될 만한 대안을 제시했다. 판소리의 테마가 지닌 특성을 침해하지 않고 되레 그 매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어법의 화성을 찾아낸 것.

이는, 9곡의 전달자 역할을 떠안은 소리꾼들이 매우 다양한 배경의 음악과도 자연스럽게 앙상블을 이루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어느 곡 하나 전체의 흐름을 거스른 대목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게 바로 이러한 성과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물증’이었다. 클래식 음악에 기반을 둔 합창단의 노래 위에 ‘새타령’이 펼쳐지고, 중세 민속 음악의 연주와 ‘이별가’가 아무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감탄할 대목이었다. 고전주의 어법에 입각한 현악 앙상블과 ‘화초장’의 조화, 그리고 교묘한 긴장의 화성 조합을 타고 넘은 ‘범피중류’의 카리스마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기의 멜로디’들은 대부분 영미권의 팝이나 유럽의 클래식에 속한다. 오랜 세월 이어진 국제 정세에 직결된 결과다. 판소리의 어느 한 대목이 ‘지구인의 아리아’로 자리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판소리의 독특한 미학을 현대적 시각으로 냉정히 인지할 것. 그리고 이를 기존의 어법에 대입시키지 말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음악의 그릇을 먼저 빚어낼 것. ‘때깔 나는 소리’가 그 꿈을 품게 했다. 고운 빛의 다른 그릇 안에 우리의 노래가 담겨 있었다.

김현준 재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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